이것은 메인 블로그에 공개할지 말지 고민중인 글입니다. 글이라기보다는 일기에 가깝겠네요. 왜 하필 제가 뇌의언어라는 책을 쓰게 된건지, 이전에는 이런 책이 존재하지 않았던건지 궁금하신 분들은 이 글이 호기심을 해소해줄거라 생각합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으신다면 김림빅이라는 사람은 어떤 과거를 보냈는지,
왜 이렇게 세상의 패턴, 규칙, 비밀을 찾는 데에 집착하는지 알게되실 겁니다.
(의식의 흐름을 더 잘 느끼실 수 있도록 독백체 그대로 놔두었습니다. )
김림빅의 과거
뇌의언어는 왜 내 손끝에서 나오게 된 걸까?
나는 어떻게 뇌의 언어를 발견할 수 있었던 걸까?
아마도 그 답은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녹아있을 것 같다.
어렸을 때 나는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다.
하지만 동시에 열등감도 심한 아이였다.
나보다 키가 크고 외향적이고 활발한 아이들 바라보면서 나는 왜 저렇게 신체적으로 우월하지 못한지,
나의 선천적인 유전자는 왜 이렇게 타고난 건지, 스스로를 원망하고 자책하면서 지냈다.
나는 스스로를 고립시켰고, 다가오는 친구들이 간혹 있었지만 나는 그런 친구들과 놀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누구도 나를 따돌리지 않았지만, 나는 스스로 나를 따돌렸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등교하고, 혼자 하교하고, 혼자 공부했다.
중학교시절 했던 검사가 있었는데 검사 항목에 ‘사회성’이라는 게 있었다. 심리검사였는지 적성검사였는지 무슨 검사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 검사결과에서 나는 사회성 최하등급이 나왔다.
위와 같은 성향이었으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도 당연했다. 사실 나는 검사를 하면서 그 검사 문항들이 사회성을 측정하는 문항이라는 것을 느꼈고, 또 이것을 부정적으로 체크했을 때 그 검사 결과로서 주위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한층 더 나빠질 것임을 알았음에도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그렇게 체크했다. 검사지를 받아들고 사회성이 최하로 나온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며 걱정하던 어머니에게 ‘나도 알아’라고 무미건조하게 대꾸했던 게 기억난다.
불행인 건지 다행인 건지, 이렇게 내가 스스로를 고립시키려는 성향은 반대급부로 혼자 성찰하고, 사색하고, 고민하고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시간을 남들에 비해 몇십배, 몇백배는 더 많이 확보할 수 있게 해줬다.
그 덕에 나는 나의 내면세계를 정교하게 탐사하고 그 지도를 비교적 이른 시기에 완성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말은 내가 인격적으로 완전한 사람이 되었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그저 내 자아가 어떻게 생겼는지, 얼마나 비쩍 마르고 초췌하고 뼈만 앙상한 몰골인지 뚜렷한 윤곽으로 그려볼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내가 이런 시간을 보내는 사이, 아마도 나의 또래 친구들은 무리 내에서 어떻게하면 높은 지위를 차지할지, 어떻게하면 인기많고 찾는 이가 많은 인싸가 될지, 어떻게하면 친구들이 자신을 우러러보게 만들 수 있을지, 어떻게하면 약해보이지 않을지, 어떻게 해야 따돌림당하지 않을지 등등.. 타인의 욕망에 점점 속박되며 자신을 (타인의 관점에서) 가치가 높은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을 것이다.
리셋
그렇게 자라고 조금 더 성숙해졌을 때 대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유지해왔던 자발적 아싸라는 이 모든 정체성과 이미지를 전부 백지에서부터 시작하고, 새롭게 사회에서 나의 존재를 만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동경해왔던 그런 이미지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책을 읽었다. 어떻게 하면 외향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인기가 많은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호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나는 그런 것에 호기심을 가졌다. 이제는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싶었다.
다른 사람의 심리를 이해하고싶었다.
‘아, 나는 이럴 때 이렇게 행동하는데 호감을 사려면 이렇게 행동해야 하는구나.’
‘아, 이렇게 해주면 자신이 진정으로 이해받는다고 느끼는구나.’
그때 읽었던 책들로부터 일련의 행동지침을 만들고, 사람들과 만날때면 이 내용들을 떠올리면서 행동했다.
하지만 머지않아 본연의 나로서 존재하지 않고 어떤 모습을 흉내 내려고 하는 것, 특히 나와 정반대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건 단기적으로는 그럴 수 있어도 아예 그러한 사람이 되어 그런 인생을 살 수는 없다는 걸 몸으로 깨닫게 되었다. 마치 나에게 사회성 배터리가 있어서 그게 모두 방전되면 더이상 그런 모습을 유지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2시간짜리 연극에 출연하는 배우가 될 순 있어도 그 연극에서 맡은 역할로 인생 자체를 살아갈 순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배우는 게 있었다. 사람의 심리에 대한 직감이었다. 그들이 어떤 경우에 마음의 문을 여는지, 어떤 경우에 나를 필요로하고, 날 떠올리고, 나에게 좋은 감정을 갖게 되는지를 알게 됐다. 말하자면 인간의 마음이라는 큰 건물을 더듬어가면서 대충 어디에 문이 있고, 어디가 벽인지를 알게된 것이다.
세상에 대한 의구심
대학교에 들어가 새로운 이미지로 환골탈퇴했을 때, 감사하게도 내 곁에는 몇몇 친구가 남게 되었다.
그 친구들에게 내가 평소에 하던 고민들을 늘어놓자 친구들은 이렇게 반응했다.
“너는 왜 그런 생각을 해?”
“왜 그렇게 어렵게 살아?”
특이하다는듯 취급했다. 나는 그렇게 반응하는 친구들이 특이하다고 느껴졌다.
‘어떻게 살면서 이런 생각을 안할 수 있지?’
고독해져서 세상을 바라봤을 때 얻는 한 가지 이 점은 ‘좋은 게 좋은 거니까’ 라는 시선으로 세상을 눈감아 주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철저하게 논리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배워왔던 윤리와 도덕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도, 내 안에는 사회 질서에 대한 의구심이 생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지금까지 배운 지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고 모순인 것 같은데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거지?’ 하는 풀리지 않는 물음표가 머릿속을 점점 채웠다.
나는 열등감 때문에, ‘내가 이해가 부족해서 그런거지’, ‘내가 너무 멍청해서 뭔가 중요한 핵심 포인트를 캐치하지 못하고 있는 거겠지.’ 라고 자책하며 더 깊이 공부하고 책을 읽어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스스로에 대해 이런 태도를 갖는 건 별로 건강하지 못하지만, 결과적으로 더 깊이 파고들며 공부하게 되는 건 잘한 선택이었다. )
이것은 일반 사람이라면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문제들에 ‘왜?’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습관을 만들어주었다. 때로는 직접 자료를 찾아 검증해야만 비로소 믿거나 믿지 않게 되었다.
이런 의심과 검증조사 과정을 거치면서, 겉보기에는 서로 개별적으로 떨어져있는 이슈들에 어떤 공통점이 있다는걸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나의 여정을 정리하자면 이 정도인 것 같다.
처음에는 그저 세상에 답이 있다는 생각에 책을 보았고, 거기에서 ‘이렇게 행동하면 된다’라는 규칙을 수집하는 데에 그쳤다.
그 다음 단계로 나는 세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지금까지 내가 찾아낸 일련의 모범답안 목록들을 보면서 ‘이게 진짜 맞는거야?’라는 의문이 생겼고, 이런 의문을 갖는 포인트들이 반복되며 쌓이고 쌓이자 도대체 뭐가 어떻게된건지 찾아보지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문제들을 파고든 결과 내린 결론은 다소 추상적인 것들이었다. 지도로 설명하자면 나는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대로나 번화가같은 곳에서 멀리 떨어진, 지도에도 표시되어있지 않은 샛길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런 결론들을 일상에서 사용하는 단어나 언어들로 표현하는 것에 한계를 느꼈다. 이 내용들을 그려내고, 설명하기 위한 새로운 용어들이 필요했다.
독서의 시작
나는 세상에 비밀에 대한 호기심에 있었다.
나는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다.
드라마에서 왜 배우들이 저렇게 행동하는지,
이 친구는 무엇에 관심이 많은지,
여자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남성에게 뭘 기대하는지,
왜 똑같은 시간동안 수업을 듣고 누군가는 한 번에 이해하고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하는지,
모든 것에 대한 답을 알고싶었다.
그리고 대기업 면접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은 날,
나는 인생을 사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래서 휴학을 하고 본격적인 독서를 시작했다.
내가 책을 읽기 시작한 이유는 그것이었다. 혼자서만 읽어서는 편식하듯이 읽을 것 같아서 독서모임도 시작했다. 생각지도 못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렇게 알게 된 지혜들은 또다른 의문들을 낳았다. 관심사는 점점 다양해졌고 수많은 분야를 읽었다.
그렇게 독서를 시작한지 10년이 다되어가고있다. 그런 호기심으로 살아오며 읽었던 책을 헤아려 보니 천권 이 넘어있었다. 인생이 바뀌었냐고 묻는다면, 천지가 개벽할 수준으로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다. 책을 읽기 전의 나는 아무도 뭐라고하지 않는데 혼자 구석에 가서 찌그러져있던, 스스로가 세상에서 가장 못났고 다른 사람들과는 어울릴 자격조차 없는 천민이라고 생각하던 자발적 왕따였다.
독서를 하면서 관심사는 계속 바뀌었지만, 본질적으로 나는 세상을 내 마음속에 그대로 옮겨놓아 시뮬레이션해보고싶은 욕망을 채우기 위해 독서를 해왔던 것 같다.
여자친구를 사귈 때에도, 그녀의 마음을 내가 상상해볼 수 있다면, 내가 시뮬레이션해볼 수 있다면, 만나기 전에 이런저런 시나리오를 상상해보고 가장 그녀와 가까워질 수 있는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을텐데.. 하는것도 시뮬레이션에 대한 욕망이었고, 이 욕망을 채우기 위해 연구한 것을 <남녀의언어>라는 책에 펴내게 되었다.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에도, 도대체 어디부터가 잘못된건지 상대에게 빙의해서 상상해볼 수 있다면, 내가 어디에서 잘못했는지 돌아보고 상대가 자존심상해서 겉으로는 내뱉지 못하지만 가장 듣고싶어하는 말을 해줄 수 있을텐데.. 하는것도 시뮬레이션에 대한 욕망이었고, 이 욕망을 채우기 위해 연구한 것을 <뇌의언어>라는 책에 펴내게 되었다.
나는 세상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싶었고 좀 더 제대로 세상을 내 마음속에 시뮬레이션 해보고 싶었다. 그 결과물을 마침내 내놓게 되었다.
천 번의 시도
이렇게 거대한 망원경을 얻은 관찰자로서 세상을 살아오며 문득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긴 기간 동안 터득한 지식을 나누고 싶다.
내가 비밀을 파헤쳐 오며 얻은 것들을, 싫어하게 된 사람들 말고 (사람은 정반대 방향으로 고칠 수 없다고 기대하는 게 경제적이다.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나와 생각이 맞고 조금만, 한 방울만 도움을 받으면 매우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그런 분들과 이 지식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마음속에 결심을 지니고 책을 쓰려고 도전했다.
정말 오랜 기간 동안 습득한 지식들이기 때문에, 단 한 권의 책으로 누군가가 알아들을 수 있게, 하나의 줄기에서 맥락에서 설명하는 것은 정말로 생각보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었다.천번의 시도
하지만 동시에 나는 이 책을 완성할 수 있다는 능력이 나에게 있으면 알았고 무한에 가까운 시도로 반복한다면 언젠가 이 책은 완성될 수 있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동안 쌓아왔던 나의 단편적인 지식들이, 각기 다른 소스에서 얻었던 지식들이 같은 방향으로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 번의 시도를 하자고 결심했다.
하루에 30분이라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1,000번을 달성할 때까지는 포기하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했다.
내가 블로그에 글을 올리지 않은 날짜는 700일이 넘어가고 있다.
처음에 각오했던 천 번의 시도 보다는 훨씬 낮은 숫자로 나의 목표는 달성되었다.
마침내 뇌의 언어를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지금의 심정
<뇌의언어>까지 내놓은 지금의 심정은 더이상 호기심으로 가득찬 상태가 아니다. 이제는 호기심 대신 다른 감정이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10년 전 20년 전의 내가 현재 나에게 다가와서 ‘너는 아직도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니? 아직도 세상에 대해 궁금한 게 그렇게 많니?’ 하고 물어본다면 나는 100점 만점에 50점이라고만 답할 거 같다.
정말 막연하고 안개 속을 걷는 것 같던 막연함이 아주 오래 지속되었다.
정처없이 헤매는 독서를 하더라도, 풀리지않는 어떤 안개속에 쌓인 의문이 꼭 한두개씩은 남았다.
하지만 어떤 지점에 이르자 그동안 풀리지 않던 수십 수백 개의 의문이 하나의 원리로 동시에 풀리게 되었다.
통찰에 특이점을 맞이하면서, 세상에 대해 궁금한 것이 궁금하던 정도가 100점에서 50점으로 급속히 내려갔다.
이제는 세상을 바라볼 때 ‘도대체 왜 그럴까?’라는 생각 대신 ‘역시 그렇구나. 안타깝다’ 라는 생각을 더 자주하게 된다.
모든 경우의 수를 시뮬레이션해볼수는 없지만, 상당수는 시뮬레이션해볼 수 있게 되었다. 상당수의 시나리오는 내가 갖고있는 시뮬레이션 틀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때로는 내가 깨달은 것이 틀렸으면 하는 순간도 많다.
그토록 진실을 추구하고 비밀을 파헤치려고 노력하며 달려와서 찾아낸 비밀은 세상을 화사하게 알아보던 나의 필터를 빼버리고, 칙칙하고 푸석푸석하고 여기저기 주름이나 있는 무보정 상태의 현실 세상을 보여주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적어도 최악의 의사결정을 한다거나 실수를 하는 가능성은 급속히 줄어들었다.
사람들에게 지혜를 주는 사람이 되고싶다.
지난 10년간 내가 깨달은 지혜를 압축한 한 권으로, 소중한 사람들이 나의 10년을 얻어 시간을 절약하고, 더 행복하고 안전하게 앞으로의 10년을 살아가셨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에 10만자 분량의 원래 버전을 1만자로 압축한, <뇌의언어 편집본>을 공개한다.